오랜만에 정태춘을 운전 중에 들었다.

나는 정태춘을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평가한다. 정태춘이 만약 미국에 태어났다면 '노벨 문학상'은 그의 것이었으리라. 정태춘은 밥 딜런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어법을 쓴다. 그렇다고 은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밥 딜런은 문장에 은유를 쓴다면 정태춘은 가사 전체가 은유적이다. 그래서인지 가사가 주는 힘이 더 강력한 듯 하다.

음악적인 면에서 밥 딜런은 포크에서 포크락 그리고 블루스로 발전 했다면, 정태춘은 포크에 국악을 더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8, 90년대가 창작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에 음악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저항 음악을 계속 하다 보니 아무래도 대중과 멀어진 측면이 있는데 이 점도 아쉬운 부분. 사랑 노래도 가끔 하면서 대중과도 교감을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음악도 국악과 트로트 요소를 섞는 것 외에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보면 좋겠다.

어쨌든 시인이자 철학자 그리고 음악가인 정태춘을 운전 중에 들었다.

 

가사 중에 젊은 사람은 '웬디스 햄버거'가 뭔가 할텐데, 90년대 종로2가 사거리, 탑골 공원 대각선 방향 빌딩 1층에 '웬디스 햄버거' 가게가 있었고, 간판이 무척 컸다. (찾아보니 지금은 '지오다노'가 있다. )

개인적으로 비둘기의 날개 소리를 '큰 박수 소리'로 표현한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비둘기를 볼 때 난 이 가사말을 떠올린다.

 

92 장마, 종로에서 - 정태춘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워,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 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높이

훠이, 훠이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빛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
훠얼, 훠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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