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동네 친구 집에 놀러갔다. 건담 프라모델같은 장난감이나 게임기, 보물섬(만화잡지책)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보다 부러웠던 건 천체 망원경이었다. 만져보지는 못했지만 보는 순간 전율같은 게 느껴졌다. 별에 관심도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 집에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코스모스'. 

아마도 친구의 형 것이었던 듯 싶다. 표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경외심이 생겼다. 그날 집에 와서 한 권짜리 두꺼운 백과사전에서 별자리에 대한 부분을 읽었다. 밤에 밖에 나가 하늘을 보았다. 도시의 밤 하늘에 몇 개의 별들이 보였다. 더 어려서 시골에서 보았던 무수히 많은 별들을 떠올랐다. 천문학자가 될까? 

그 뒤로 잡지책 같은데 있는 망원경 광고를 보곤 했다. 갖고 싶던 것이 13만 원 쯤이었는데 지금 가치로는 한 200만 원 정도 될 것이다. 부모님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마 샀다고 해도 딱히 볼 데가 없었을 것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 전율은 사라졌고, 별은 그저 아주 가끔 펼쳐보는 사진 앨범같은 존재가 되었다. 코스모스도 언젠가 읽어야 할 목록에만 존재했다. 그런 책을 이제 보았다. 

우주를 한바퀴 여행한 기분이다. 

책은 양장과 페이퍼백이 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양장이 좋겠지만,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어야 한다면 페이퍼백을 사는 것이 좋다. 양장은 500쪽이고 페이퍼백은 700쪽이라고 해서 양장이 더 얇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text파일로 읽었다가 이번에 다시 민음사의 것(공경희 번역)으로 보았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것인데 난 이렇게 느낀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주인공, 콜든 홀필드는 부조리한 어른이 되어 간다. 어른이 되고 싶은 것 같지만 사실 저항하고 싶다. 어른의 세계는 낭떠러지다. 아이들은 키가 큰 호밀밭 속에서 철없이 놀고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된다. 호밀밭 끝에 있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콜든은 아이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다. 자신이 어른이 되는 것을 막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시간이 지나는 것. 그것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으니까. 그가 선택한 타협은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 뿐이다. 콜든은 그래서 계속 우울하다.

콜든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게 만든 노래를 가져왔다.

호밀밭은 갈대숲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노래 내용은 대충 이렇다. '호밀밭에서 그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많은 남자들이 그녀와 호밀밭에서 관계해도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까 소설에서 말하는 호밀밭은 어른으로 가는 은밀한 장소를 뜻하는 것인듯 싶다.

 

 

Comin thro the rye

- Poem: Robert Burns


Gin a body meet a body,
Comin' through the rye
Gin a body kiss a body,
Need a body cry?
Ilka lassie has a laddie
Nane, they say, ha'e I
Yet a' the lads they smile at me
When comin' through the rye

Gin a body meet a body,
Comin' frae the well,
Gin a body kiss a body,
Need a body tell?
Ilka lassie has a laddie,
Nane, they say, ha'e I,
But all the lads they smile at me
When coming though the rye.

Gin a body meet a body
Comin' frae the town,
Gin a body meet a body,
Need a body frown?
Ilka lassie has a laddie,
Nane, they say, ha'e I,
But all the lads they lo'e me weel
And what the waur am I?

Amang the train there is a swain
I dearly lo'e mysel'
But whaur his hame or what his name,
I dinna care to tell.
Ilka lassie has a laddie,
Nane, they say, ha'e I,
But all the lads they lo'e me weel
And what the waur am I?

Glossary
a': all
dinna; do not, don't
frae: from
gin: if
ha'e: have
ilka: each
lo'e: love
nane: none
waur: worse
whaur: where

 

 


내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책이라면 '성공하는 법'같은 자기계발서인데 그럼에도 눈이 가고 가끔 보게 되는 것이 '글 잘쓰는 법'에 대한 책이다. 자기계발서는 노력보다 욕심이 더 클 때 보는 것 아닌가 싶은데 나에게는 '글 쓰기' 분야가 그런가보다.

유시민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30년 영업 기밀'은 사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검색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 영상을 글로 쓴 듯하다. 그러니까 '글 쓰기'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것보다 동영상을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글 쓰기외에 책 읽기에 대한 내용도 있다. (그마저도 작가의 다른 책 '청춘의 독서'가 더 유익한 듯 하지만)

그랬거나 저랬거나 요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있는데 너무 따분해서 쉬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러자 조금 유쾌해졌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역자: 양억관 옮김
출판사: 민음사 2013.7.1
페이지수: 440

내 평점: 3.0

 

얼마 전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사망했다는 인터넷 뉴스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작가를 세치혀로 살아가는 건달들이라며 혐오했고, 그래서 자신의 집에는 소설책이 없다는 내용이다. 난 피식 웃었지만 그 뒤로 소설이라는 것, 작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곤 한다.


소설과 작가에 대한 이런 식의 공격은 사실 엄청 오래된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소설, 연극, 시 따위를 천하에 쓸데 없는 가짜라고 치부했고, 작가는 갖다 버려야 한다고 공격한다. 정확한 말은 아니고 대충 그런 느낌이다. 그 뒤로 아리스토 텔레스가 변호하면서 이런 것들이 학문이 된다.


소설 책 하나 갖다 놓고 주제넘게 무슨 철학을 설파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을 읽으면서 난 귄터 그라스 사망 기사에 달린 댓글이 떠올랐다. 정말 쓸모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잘 읽힌다. 그것이 좋다. 문장이 좋아서 인지, 번역가가 잘 읽히게 번역한 건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한장 한장 잘 넘어간다.


무라카미를 읽으면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하는데, 그건 나도 쓰고 싶다라는 열망을 강하게 불어 넣어 준다는 점이다. 다른 작가들의 글은 나에게 '소설 쓰기는 너의 영역이 아니야'라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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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관심 있으세요?"

동료가 묻는다.

"많지 관심"

그러자 그가 빌려준 책.

결국 읽고 있던 다른 책을 잠시 미뤄두고 읽었다.

오마이뉴스의 오현호 기자겸 대표가 행복지수 1위라는 덴마크를 취재한 이야기이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다고 말하게 하는지 분야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쉽게 읽히므로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이면 읽을 것이다.

동화 같은 덴마크의 복지 정책은 미뤄두고 여기서는 딱 두 가지만 짚고 싶다.

하나는 기업 복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업의 복지는 무엇일까. 책에서는 덴마크 회사의 복지를 직원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퇴근 후에 집에서 하게 될 저녁을 짓는 등의 일을 회사가 해결해주어 푹 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나를 조금 놀라게 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다른 하나는 좀 개인적인 것인데 '가슴이 뛰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에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하고 있는 질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가. 

이 책은 행복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초등학생들 밥 주는 것 갖고도 아직까지 시끄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할 수 없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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