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4/5

 

예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MBC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했다. 권력에 의해 숨겨졌거나 이래저래해서 잊힌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이 내용이었다. 일요일 밤 11시를 넘어 방영했기 때문에 시청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힘이 있었다. 그동안 말할 수 없던 일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변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에 왔다. 누구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때 나는 해방감조차 느꼈다. 그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가 한국의 르네상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김연수의 소설 '원더보이'에서는 이것과 대비하여, 80년대에 '지금은 말할 수 없다.'라는 책을 낸 기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아.. 음.. 그건 모르지, 말할 수 없지'로 점철된 책인데도 판매 금지가 된다. 물론 소설이다.

영화 '암살'의 결말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있던 시절을 지나 다시 말할 수 없는 시대에서 멀리에 있는 국경을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1945년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때 임시정부의 김구는 통곡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 부분을 왜곡했다.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했기 때문에 한국(임시 정부)은 승전국이 되지 못한다. 반민특위 역시 우익(반민족행위세력이라고 써야겠지만 그들이 곧 이땅에서는 우익의 뿌리라 굳이 우익이라 쓴다.)의 습격과 방해로 1년도 안되어 강제 해산되지만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반민특위 해체를 외쳤던 우익들의 시위를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를 살리는 연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 음.. 그건 모르지, 말할 수 없지'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사실 우리의 암살은 실패했다. 염석진과 강인국은 지금도 살아있다.

결말이 아쉬운 것을 제외하고는 좋은 영화다. 보는 동안 '시민케인'이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위대한 영화 100선이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같은데 꼭 '시민케인'이 들어가는데 그것만큼 시나리오가 좋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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