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영화를 보다 말고 갑자기 '나쁜놈'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평소 영화를 조용히 보는 친구이다. 오히려 보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건 내 쪽이다. '범인은 저 놈 같아', '재미없어' 따위의 것 말이다. 그러면 친구는 아무말 안하거나 어쩔 때는 조용히 좀 하라고 까지 했다. 그런 친구가 '나쁜놈'이라고 말하다니.

장면은 캡틴아메리카(이하, 캡틴)가 아이언맨(이하 아이언)을 흡씬 두들길 때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왜 그랬냐고 물으니, 아이언맨이 불쌍하다고 했다. 다들 캡틴만 좋아하고 아이언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다 캡틴은 아이언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공격만 했다고 한다. 

당신은 캡틴인가, 아이언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인가.

시빌워는 소코비아 협정에 대해 반대와 찬성으로 어벤저스가 갈라지면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원작에서는 초인등록법안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the Superhuman Registration Act (SRA, or SHRA). 소코비아 협정은 엄청 두꺼운 책 한권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이 별로 밝혀지지 않았다. 대충 어벤저스를 UN산하로 흡수한다는 것인데 이 정도라면 서명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다. 캡틴과 아이언이 설전을 벌이는 것이 인상적이지 못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다. 대충 기억나는 것이, 캡틴은 '사람 구하는데 (결재를 받게 되어) 타이밍을 놓칠 것이다' 라고 했고, 비전(아이언팀)은 '어벤저스는 나쁜놈들의 도전을 계속 받을 것' 그리고 아이언의 '우리는 통제 좀 받아야 돼'같은 것 등인데 다들 설득력이 없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이 법안은 미국의 애국자법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한다. 작가인 마크 밀러는 미국에서 9/11 사건 이후로 자유보다 안전을 선호하게 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얼마전 비슷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테러리스트 의심자'를 국가 기관이 언제든 감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대충의 공통 내용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협정 내용은 '어벤저스를 UN 산하에 두고, UN의 통제를 받으며 각자는 위치와 신상을 감시 받을 수 있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미국 애국자법은 무차별 도감청 등의 독소 조항 때문에 말이 많았다가 스노든의 고발 이후에 지금은 '미국자유법'으로 개정되었다. 최근 FBI와 애플사가 아이폰의 잠금해제를 '도와주네 안되네' 같은 공방도 이 논란의 테두리에서 봐야 한다. 한국의 '테러방지법(이지만 사실 국정원권력강화법)'도 총선 이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어떻게 될지 관심이다. 어쨌든 이런 배경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보았고, 소수의 자유를 다수의 안전을 명분으로 제재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대략의 배경은 이렇다. '어벤저스2;에이스 오브 울트론'에서 소코비아(동유럽의 가상 도시)가 울트론에 의해 하늘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는데 거대한 운석처럼 지구가 파괴될 수 있어 어벤저스는 시민들을 비행선으로 탈출 시키고, 도시를 산산 조각 내어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러나 파편이 도시 외곽으로 떨어져 희생자가 생긴다. '캡틴아메리카2; 윈터솔저'에서는 워싱턴DC가, 어벤저스1에서는 뉴욕이, 영화 초반에도 희생자가 생기는 사건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어벤저스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느껴졌고, 그래서 100여 개의 국가가 협의해서 만든 것이 '소코비아 협정'이다. 

 

사실 어벤저스는 실드(S.H.I.E.L.D.)에 의해 만들어졌고, 실드는 미국 정부 기관이니 이 책임은 미국 정부가 짓는 것이 마땅하다.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얘기가 안되니까 일단 시빌워의 설정을 받아들여 어벤저스는 통제되지 않는 일종의 '정의단체'라고 여기고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자가 볼 때 '정의단체'가 아무 견제 없이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UN 산하에 어벤저스를 둔다는 소코비아 협정에는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캡틴은 'UN의 통제를 받으면 그것을 장악한 자에 의해 조종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견제'가 아닌 '통제'라는 것에 있다. 캡틴이 볼 때 UN도 하나의 단체이고, 이곳에 소속된다는 것은 UN의 손발이 될 뿐이라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캡틴에게 UN의 통제는 어벤저스가 국정원으로 흡수되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렇지만 영화 내에서는 다른 견제를 위한 방안이 나오기 전에는 'UN의 통제'가 현실적인 방안 아닌가 싶다. 아울러 소코비아 협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그것으로 협상을 해야 하는데 100여 개 국가에서 만든 협정안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심각한 독선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협상을 하게 되면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법정 드라마로 영화는 바뀌겠지만.

어쩌면 캡틴이 협상이 아닌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슈퍼휴먼을 등록하고 감시한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건 엄연히 본 사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슈퍼휴먼의 힘을 좌지우지하려는 어떤 저의조차 느껴지는 대목이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우리는 소수에 대해 다수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원칙으로 착각하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다수결은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다수의 의견에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다. 특히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정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독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벤저스(슈퍼휴먼)를 등록하여 감시하려는 '소코비아 협정'에 찬성할 수 없다. 

정리하면 어벤저스를 UN 기구로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캡틴은 나만 잘났다는 엘리트주의자(참조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42546 )라고 할 수 있고, 이들을 등록하여 감시하려는 아이언은 국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당신의 선택은 누구인가?



끝맺음.

사실 아이언과 캡틴이 싸우면 아이언이 이긴다. 왜냐면 캡틴 쪽은 개인이고, 아이언은 무인 조종도 할 수 있어 군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이언은 겨우 '워머신'만 데려왔다. 이건 순전히 아이언이 봐준거라고 해야 한다. 그것도 모르고 캡틴은 아이언을 마구 때렸다. 친구가 '나쁜놈'이라고 할 만하다.

회사 동료들과 농담으로 영화 시빌워는 '좌파와 우파의 싸움', '빨갱이와 친일파의 싸움', '흙수저와 금수저의 싸움' 같은 비유를 하곤 했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세상을 양분하곤 한다. 좌파는 빨갱이, 우파는 친일파라는 식으로) 그러다가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은 왜 아이언이지?" "걔는 매수됐지. 악플러랄까. 그러니까 일베같은 거야, 손가락을 잘 봐 일베잖아. 스파이더맨 일베론이랄까."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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