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우선 엄청난 규모의 설정에서 놀란다. 도저히 1927년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마구 나온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볼 수 있는 고도로 발전했지만 암울한 미래, 기계와 유기물을 합친 복제인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볼 수 있는 착취 당하는 노동자, 자본가, SF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학자의 배신, 기독교가 말하는 메시아와 적그리스도, 영화 '십계'에서 볼 수 있는 타락한 민중.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냄비에 넣어 커다란 국자로 휘저은 듯한 영화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주인공 '브리기트 헬름'의 놀라운 다중 연기는 실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영화로 인해 떠오른 것들을 짚어보자.

1847년 독일에서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하여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선언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있기 30년 전, 1811년 영국에는 기계파괴운동이라고 하는 러다이트운동이 있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기계가 급속하게 보급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벌어진 노동 운동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있었고 1922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다. 1919년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베르사유 조약을 맺는다.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생긴다. 급진 공산주의자들이 늘어나고, 보수주의자는 극우화되어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일명 '나치')이 생기고, 이곳에 히틀러가 입당한다. 그는 1923년 뮌헨 폭동을 일으켰다가 투옥된다. 1929년에 독일은 대공항 상태가 되고, 1932년 나치는 제1당이 된다.

영화와 관계는 없지만,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였고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되어 전국을 강타한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닥치고 대량의 실업을 목격한 당시 사람들은 미래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고 보았을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배경의 이야기다.

영화는 거대한 이야기와 놀라운 특수효과로 1927년 최고의 블록버스터가 아닐까 싶게 만들어졌다.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다. 하지만 재미는 없다. 그리고 감독의 한계일까. 노동자의 봉기가 한낱 선동에 의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허무하도록 간단하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맨 앞칸에 있는 권력자가 주장하던, 각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해야 한다는 신분제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의 영화다.

어쨌든 장면 장면이 흥미로운 상징으로 가득하여 두고 두고 곱씹어보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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