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침. MBC에서 방영하는 '서프라이즈'에서 귀 익은 음악이 배경으로 나온다. 왠지 다락방 깊숙한 곳에 먼지가 캐캐하게 쌓여있는 상자를 꺼내 입으로 훅 불고 여는 기분이 든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 세월이 쌓여 빛이 바랜 물건들. 그것들을 봐라보게 하는 음악.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주제곡이다.

그 날 운전을 하면서 귀에서 계속 맴도는 그 음악을 유튜브로 찾아 반복하여 들어 본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딱 하나의 영화가 있다면 아무래도 이것이겠구나 싶다.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스무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라디오 방송 '조일수의 FM 영화 음악'을 곧잘 들었는데, 거기에서 소개한 영화를 좋아했다. 이 영화를 포함하여 스탠 바이 미(감독: 롭 라이너), 버디(감독: 알란 파커), 택시 드라이버 (감독: 마틴 스콜세지) 같은 것이 기억난다.

'원스 어펀...'은 최초 8시간 짜리였는데 처음 상영할 때 4시간으로 편집되었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는 얘기. 그리고 국내에는 2시간 짜리가 되었다는 등의 얘기를 그 방송을 통해 알게 된다.  (자세한 설명은 이곳을 참조 )

영화는 비디오로 보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빌려온 비디오를 플레이어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기대로 부풀었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20분이 못되어 꾸벅 꾸벅 졸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에도 보려고 하지만 역시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테이프를 반환해야 하는 다음 날. 마지막이라며 굳은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고, 끝까지 보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본 영화. 마지막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건 내 인생에 있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겠구나. 이래서 조일수씨가 그토록 호평을 했구나.


얼마 뒤 친구가 놀러왔을 때 '닥치고 넌 이 영화를 꼭 봐야해'하며 다시 비디오 테잎을 빌렸다. 졸고 있는 친구의 뺨을 때리며 강제로 보게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날 밤도 혼자 밤을 세워 보았다.

세월이 흘렀고, 영화를 쉽게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 당연히 이 영화를 받아 본다. 그리고 여전히 8시간 짜리 원판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 한곳에 세워둔다.

'서프라이즈'를 통해 열려진 추억 상자는 나에게 인터넷을 검색하게 했다. 패션 브랜드 '구찌'에서 디지털로 복원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얼마 뒤 CGV에서 감독 확장판을 개봉한다는 소식도 듣는다. 고맙게도 이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보게 될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흔히들 이 영화를 느와르라거나 갱스터 영화라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전쟁 장면이 있다고 해서 벤허를 전쟁 영화로 구분하지 않듯이 이 영화는 인간의 인생을 담은 휴먼 드라마로 기억한다.

스무 살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세세한 것 보다 영화가 주는 어떤 거대한 느낌을 받은 듯 하다. 첫 사랑이 깊게 새겨진 유년과 화려한 젊음 그리고 늙어서의 회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

'더이상은 힘들다' 버전인 이번 감독 확장판(251분짜리)을 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에 갖지 않았던 의문이 많아진다. 쓸데없을 수 있겠지만.

- 맥스는 정말 자살했는가
- 누들스와 맥스에게 수영은 무슨 의미인가
- 맥스가 구두를 닦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 어째서 금주법 장례식 장면이 두 번 나오는가
- 맥스가 필요하다는 1000만불, 2000만불은 무엇을 위한 돈인가
- 맥스는 100만불로 무엇을 했는가
- 프랭키(조 패시)가 누들스를 지나치는 장면은 무엇 때문인가
- 창고에서 데보라는 옆 자리를 비웠는데 누들스는 왜 앞에 앉는가
- 그리고 누들스는 데보라를 끝내 겁탈한 것인가, 미수로 그친 것인가

요즘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인생의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영화를 말한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가 된 이유는 아마도 이런 요소들 때문이 아닐까.

   "이루어지지 못한 첫 사랑, 목숨 바칠 만큼 진한 우정의 친구, 돌이켜보는 어린 시절, 성공과 실패, 배신, 덧 없는 인생, 망각 속에 잊혀진 시간같은 이해할 수 없는 몇 개의 장면... 그리고 심장을 후비는 음악.

그리고 꼭 스무 살에 본 영화 일 것."

혹자는 이 영화를 '대부'와 비교하곤 하는데 쓸모없는 짓이다.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라고 본다. 어쨌든 세월히 흐르면 대부는 잊혀져도 이 영화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평일 늦게 CGV 왕십리에서 이 영화를 본다. 마지막 크레딧까지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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