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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나서 가끔 드는 의문이 있다. 이런 영화는 대본을 검토 안하는 건가? 아니면 대본대로 찍긴 다 찍는데 편집을 못하는 건가? 혹은 원래 공부하고 보라는 건가?

내가 꼬꼬마일 때 최고의 히어로는 당연 '슈퍼맨'이다. '아이언맨'을 제일 좋아한다는 조카를 보면서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슈퍼맨'이 잘되길 바란다.

어쨌든 '맨오브스틸' 만큼은 해주길 바랬다.

일단 인물들의 앞뒤 설명없는 등장부터 거슬린다. 굵직 굵직한 캐릭터가 아무 설명없이 막 나온다. 뭐 좋다. 후속편에서 풀면 되니까. 그래도 적어도 '렉스'정도는 배경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냥 렉스는 나쁜놈인건가? 오히려 설명이 필요없는 배트맨의 배경은 뭐 이렇게 지루하도록 할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인셉션'도 아니고 꿈 속에서 꿈을 깨고, 다시 꿈을 깨는 유치한 발상은 도대체 누가 한건지.

부족한 여러 개연성 문제는 넘어가겠다. (굳이 여기서 다루지 않아도 될 듯)

마지막으로 캐스팅 문제. 알 프레드역에 제레미 아이언스는 너무 오바 아닌가. 내가 나이 먹어서 예전 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알프레드를 하기에는 아직 너무 잘생겼잖은가. 씬 스틸러 정도가 아니라 주연이 안보인다.

그리고 제발 슈퍼맨은 그만 운동했으면 좋겠다. 전편도 근육이 좀 과하다고 느꼈는데, 그것보다 더 심해졌다. 근육은 배트맨에 맡기길. 원더우먼은 할 말없다. 좀 아쉽다는 정도.

그래도 슈퍼맨이 나오니까. 그리고 좀 지루한 것만 참아주면 그럭저럭 볼만하다고 말하련다.

별점: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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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다. 그냥 막 지루하다. 마흔 가치의 담배를 한꺼번에 핀 것 같이 지루하다.

 

평점: ★+3

감독: 이치카와 준
출연: 잇세이 오가타 (토니 타키타니/아버지 쇼자부로 역), 미야자와 리에 (에이코/히사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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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화성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게 전부인 영화; 마션 
(사진출처: movie.daum.net)>

 

고기도 사고, 야채도 사고, 갖은 양념도 사고. 그렇게 잔뜩 요리 재료를 준비하더니 막상 식탁에 올려놓은 건 라면같은 그런 영화다.

"화성 탐사 중에 한 사람이 낙오되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래 농사를 짓게 하자. 그러려면 아무래도 식물학자면 좋겠지."

이런 기초적인 아이디어에서 멈춰 있는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그뒤로 "이야기를 어떻게 하지? 어떤 사건을 만들지?" 이런 소리를 작가, 감독, 온갖 스태프들이 내 귀에 대고 계속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온갖 떡밥으로 점철된 프로메테우스를 마무리 지을 수 없는 리들리스콧 감독이 시간을 때우려고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조차 들었다.

 

평점: ★+2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맷 데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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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이 만들어 놓은 미로에 갇혀 있다. 탈출하려는 아이, 안주하려는 아이. 아이들끼리 갈등이다. 메이즈 러너 1편을 볼 때도 억압받는 아이들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하면서 보았다. 각 장면에 어떤 메타포가 있는지 고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이상해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2편. 미로에서 탈출하여 안전한 곳에서 생활하지만 사실 그것 역시 어른들이 만든 세계였다. 다시 탈출하고 사막으로 나간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정말로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여행한다. 그렇게 다시 부조리한 어른을 벗어나 자기만의 피안을 찾는 그런 비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1편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야기가 엉뚱해진다. 그래서 다시 비평을 포기한다.

그러니까 '메이즈 러너'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더구나 3편에 계속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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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 
8.6
감독
캐롤 리드
출연
조셉 코튼, 아리다 발리, 오손 웰스, 트레버 하워드, 버나드 리
정보
미스터리, 스릴러 | 영국 | 100 분 | -
글쓴이 평점  

 

 

조금 생각해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해야 하는 해리가 왜 홀리를 불렀는지, 그래놓고 홀리 앞에는 왜 나타났는지. 놀이 공원에서 굳이 왜 만났는지. 추격을 받다 자신을 죽여달라는 표정은 왜 지었는지. 홀리는 왜 쓰러져가는 해리를 죽일 수 밖에 없는지. 짐작은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옆으로 일단 치워두면 인상 깊은 장면이 많다.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에 죽기전에 봐야한다거나 위대한 영화 어쩌구 같은데에 순위를 차지하는 것일 수 있겠다. 하수구의 추격씬이나 너무나 유명한 마지막 엔딩 부분. 그것 외에도 떠나는 기차의 불빛, 어두운 골목에서의 그림자같은 것들이 대단하지 않은 영화를 대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비틀리고 암울한 시대를 대변하는 해리의 논리를 비웃는 듯한 배경 음악이 어우러져 영화를 뭔가 아름답게 기억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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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

 

예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MBC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했다. 권력에 의해 숨겨졌거나 이래저래해서 잊힌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이 내용이었다. 일요일 밤 11시를 넘어 방영했기 때문에 시청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힘이 있었다. 그동안 말할 수 없던 일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변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에 왔다. 누구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때 나는 해방감조차 느꼈다. 그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가 한국의 르네상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김연수의 소설 '원더보이'에서는 이것과 대비하여, 80년대에 '지금은 말할 수 없다.'라는 책을 낸 기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아.. 음.. 그건 모르지, 말할 수 없지'로 점철된 책인데도 판매 금지가 된다. 물론 소설이다.

영화 '암살'의 결말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있던 시절을 지나 다시 말할 수 없는 시대에서 멀리에 있는 국경을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1945년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때 임시정부의 김구는 통곡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 부분을 왜곡했다.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했기 때문에 한국(임시 정부)은 승전국이 되지 못한다. 반민특위 역시 우익(반민족행위세력이라고 써야겠지만 그들이 곧 이땅에서는 우익의 뿌리라 굳이 우익이라 쓴다.)의 습격과 방해로 1년도 안되어 강제 해산되지만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반민특위 해체를 외쳤던 우익들의 시위를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를 살리는 연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 음.. 그건 모르지, 말할 수 없지'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사실 우리의 암살은 실패했다. 염석진과 강인국은 지금도 살아있다.

결말이 아쉬운 것을 제외하고는 좋은 영화다. 보는 동안 '시민케인'이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위대한 영화 100선이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같은데 꼭 '시민케인'이 들어가는데 그것만큼 시나리오가 좋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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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머리에는 '걸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까줘야 될지 모를 만큼 총체적 부실 덩어리다. 욕을 하기도 아까운 수준이다.

하나만 말하자면 '카일 리스'의 캐릭터 분석에 문제가 있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 강력한 기계에 비해 나약하지만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는 헌신적인 사람, 사랑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외로워 보이고, 우울해보이는 '카일 리스'를 근육질의 투덜이로 표현한 것은 정말 실망스럽다. 감독이 전작들을 보긴 본 것인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터미네이터는 아놀드가 아니라 제임스 카메론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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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우선 엄청난 규모의 설정에서 놀란다. 도저히 1927년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마구 나온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볼 수 있는 고도로 발전했지만 암울한 미래, 기계와 유기물을 합친 복제인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볼 수 있는 착취 당하는 노동자, 자본가, SF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학자의 배신, 기독교가 말하는 메시아와 적그리스도, 영화 '십계'에서 볼 수 있는 타락한 민중.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냄비에 넣어 커다란 국자로 휘저은 듯한 영화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주인공 '브리기트 헬름'의 놀라운 다중 연기는 실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영화로 인해 떠오른 것들을 짚어보자.

1847년 독일에서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하여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선언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있기 30년 전, 1811년 영국에는 기계파괴운동이라고 하는 러다이트운동이 있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기계가 급속하게 보급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벌어진 노동 운동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있었고 1922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다. 1919년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베르사유 조약을 맺는다.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생긴다. 급진 공산주의자들이 늘어나고, 보수주의자는 극우화되어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일명 '나치')이 생기고, 이곳에 히틀러가 입당한다. 그는 1923년 뮌헨 폭동을 일으켰다가 투옥된다. 1929년에 독일은 대공항 상태가 되고, 1932년 나치는 제1당이 된다.

영화와 관계는 없지만,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였고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되어 전국을 강타한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닥치고 대량의 실업을 목격한 당시 사람들은 미래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고 보았을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배경의 이야기다.

영화는 거대한 이야기와 놀라운 특수효과로 1927년 최고의 블록버스터가 아닐까 싶게 만들어졌다.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다. 하지만 재미는 없다. 그리고 감독의 한계일까. 노동자의 봉기가 한낱 선동에 의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허무하도록 간단하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맨 앞칸에 있는 권력자가 주장하던, 각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해야 한다는 신분제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의 영화다.

어쨌든 장면 장면이 흥미로운 상징으로 가득하여 두고 두고 곱씹어보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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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영화를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하다. 뭐랄까. '주머니 털이 영화'라던가 '깡패 영화'라던가.

그러니까 안 보면 안될 것 같아 보긴 보는데 재미없는 것을 말한다. 전작이 좋았으나 감독이나 배우같은 것이 바뀌면서 망작이 되어 가거나, 감독에 대한 결초보은으로 계속 봐주고 있는 영화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얼마 뒤 개봉할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그렇고, 트랜스포머 시리즈, 마블의 영화같은 것들, 007 시리즈도 있다. 감독의 경우는 식스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디스트릭트9의 닐 블롬캠프등이다.

아무튼 '쥬라기월드'는 도대체 왜 만든 것인지 싶지만 간단하게 결론 내렸다. '내 주머니 털어가기'위해서라고. 보는 동안 이렇게 영화를 대충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싶었다.

시리즈를 몇 개 더 만들다보면 아마도 '티라노의 발톱' 수준까지 내려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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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이 2003년이었나 보다. 2003년 12월 28일에 쓴 글이 있는 걸 보면. 아마 그때도 혼자 봤을 것이다. 그 즈음이라면 깊게 만난 사람과 헤어진지 몇 년 되었을 때였고, 또 잠깐 만난 사람과도 헤어진 상태. 그러니까 몇 번의 이별 후에 영화를 본 것.


EBS 라디오에서 해주는 소설 낭독을 자주 듣는다. 요즘은 다시 듣기로 '냉정과 열정시대'를 듣고 있다. 배우 진태현과 박시은이 낭독 하는데 둘의 목소리가 준세이와 아오이로 참 잘 어울린다. 책을 읽으려고 사놓기도 했는데, 여하튼 요즘 이걸 듣느라 영화도 다시 봤다.

10여 년전에 봤을 때와 다른 건 더 많은 아픔이 느껴졌다는 것이고, 같은 건 여전히 나는 '준세이'나 '아오이'가 아닌 '마브'와 '메미'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냉정'과 '열정'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때 쓴 글을 올린다.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사람을 가슴에 담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다지 절망적이거나 슬퍼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일을 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고, 쇼핑도 하고 또 섹스도 하고...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일지 모른다. 그래서 적당한 사람과 만나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할지 모른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마음을 가졌다.

남자 주인공 준세이, 여자 주인공 아오이 그리고 준세이를 좋아하는 메미, 또 아오이를 좋아하는 마브가 나온다. 대부분 사랑 영화가 그렇듯이 주인공끼리는 서로 갈망하고, 그 둘을 좋아하는 메미와 마브같은 존재는 거추장스런 장애물일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준세이가 아닐까 혹은 아오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겠지. 그래서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될 것이며 새롭게 사랑을 이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겠지.

사실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나는 준세이나 아오이가 아니라 메미나 마브일지 모른다. 만약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 달려간다고 해도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영화처럼 우수에 젖어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에게 메미나 마브일 것이니까. 그의 사랑을 위해 떠나줘야 하는 역할이니까.

그래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슬픈 결론을 내려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는 인연이 없는 것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200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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